자기자신을 드러내라.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매주 한두 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5년 간 100명이 넘는 게스트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덕분에 정말 편하게 방송했어요.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이다. 그 비법은 단 하나, 사전조사이고, 조사를 하는데 쏟은 시간은 3분 내외였다. 사전조사는 3분이면 충분하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만나면 ‘대체 이 사람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거지?’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안겨 줄 수 있다. 사전조사의 핵심은 이 사람의 취미가 무엇인지, 종교는 있는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등이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정도의 느낌만 낼 수 있으면 된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한 중년의 가수였다. 나는 그를 만나기 직전 노래를 한 곡 듣는 동안 그의 최근 인터뷰 기사 하나를 찾아 정독했다. 그때 그가 한 말을 메모해뒀다가 방송에서 ‘최근 기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걸 봤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신건지 얼른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에 그는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쏟아냈다. 상대의 자세한 정보는 만나서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

상대의 관심사를 찾아라.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청은 상대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긴장한 탓에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면 대화의 무게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다음 나는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느라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다. 단순히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꼬리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질 좋은 꼬리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무게 중심을 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 속에서 주요 정보와 부수적 정보를 재빨리 구분해야 한다. 이는 대화의 효율을 극대화하며 엉뚱한 대답을 하는 횟수를 줄여준다. 최근 “내가 오늘 우울해서 빵을 샀어.” 라는 말로 상대의 반응을 알아보는 밈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 주요 정보는 우울하다는 것이고 빵을 샀다는 것은 부수적 정보이다. 이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상대의 말에 얼마나 감정을 이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주요 정보를 제대로 구분했다면 “무슨 일 있었어? 왜 우울해?”라는 꼬리질문을 할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빵 맛있겠다.”같은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주요 정보를 잡아내는 듣기능력은 질 높은 경청에 속한다.

화제를 파생시키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좋지 않아 실망한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재미 없는 영화에 관해서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 그때 영화에 등장한 배우를 언급하며 그가 출연했던 다른 좋은 작품을 이야기 하거나 평소 좋아하는 영화, 인생영화 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재미 없는 영화’에서 ‘영화’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이는 또 다른 주제를 파생할 수 있다.

“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지게 돼. 가르마를 어떻게 타는지, 이런 날은 어떤 셔츠를 입는지, 이런 상황에선 정확히 어떤 얘기를 할지 알게 되면 난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야.”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다. 1박 2일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끊이지 않은 대화를 통해 서로 많은 것을 알게 된 셀린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대화에는 반드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기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