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인지 비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날, 사진아카이브의 이재복관장님을 만나뵈러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굉장히 아늑한 사진아카이브 공간이 펼쳐졌다. 주황빛의 작은 등이 목재인테리어 곳곳에 놓여있어 아늑함이 2배가 되면서, 마치 오늘의 궂은 날씨로부터의 안전한 피난처같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문 정면에는 사진관련 희귀한 책들이 무수히 꽂혀있었고, 그 앞에는 관장님 책상이 유리문을 향해 마주보고 놓여있었다. 

신을 벗고, 서가쪽으로 걸어들어가니, 연초제조창 시절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한 장이 이재복관장님 옆자리에 걸려있었다. 산업구조가 변모하면서 담배를 연신 생산하던 연초제조창이 문화를 생산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 변모하면서 문화제조창으로 거듭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사진만큼 단박에 과거를 상상하게 하고, 추억의 문을 열어주는 창이 있을까. 옛 담배공장이 담긴 흑백사진 한 장이 당시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 집안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누군가의 자식 등 수많은 노동자들의 군상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사진 한 장은 이런 힘이 있다.  

– 책을 많이 사다보면, 빈구석이 생겨요. x축, y축으로 보다보면, 한가지 분야, 예를 들어, 사진책같은 경우, A라는 책과 D라는 책은 있는데, 그 사이를 이어주는 B와 C라는 책을 찾아보니 없으니, 채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죠.

▶ 아카이브 본연의 역할이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어떤 도움이 될까요 관장님. 성공사례나, 관장님 작업사례가 있다면, 예를 들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사진아카이브가 국내는 이제 시작이라고 보면 되요. 그래서 성공사례를 찾기 어렵구요. 보통 예로 드는 것이 미국 FEA에요. 미국은 1900년대 초반 뉴딜 이후, 농업현장아카이브사업을 했었어요. 이게 뭐냐면, 미국의 농림부에서 사진가를 고용해서 전국의 농업현장들을 기록하게 하는거에요. 미국의 농업현실이 나쁘지않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사업치고는 현장을 직접 촬영한 작가들이 본 농촌은 다 굶어죽기 직전이란말이죠. 이런 척박한 농촌의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 사진들은 미국의 실상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죠. 그런데 후대에 와서 이 사진들을 보고, 보관하지 말고 처분해달라는 이야기들이 거론되기도 하면서, 실제로 필름에 구멍을 내놓기도 하는 등 아카이브를 훼손하는 일까지 일어났었죠. 국내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요. 청주만해도 80년대 박물관, 도청 등 공공기관에 보관 중인 필름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내다버렸어요. 충북도청도 지어진지 100년 가까이 됐는데, 자료가 별로 없어요.

저 같은 경우, 남주동 일대를 1년 동안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온라인상에 구축된 구술채록들을 들 여다보면, 너무 옛 정보들이란 말이죠. 이를 기반으로 동네조사를 하다가, 해당필지를 찾아서 골 목길을 잘못들어서 고생한 적이 많았고, 너무 많은 지형변화가 일어나서, 채록상 표현된 장소를 촬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 적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된 모습들을 보존한 기 록들이 없어서 동네변천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졌고,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지 울 수 없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집안에 카메라있으면 가족들은 누구라도 다 찍게되지않나요?”
관장님 작업얘기를 하면서, 직접 촬영한 가족의 대소사가 담긴 꽁꽁 숨겨둔 사진책들을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구순 맞이 기념, 아버지 고향 마을에서 찍은 사진, 추석때 모인 가족단체사진, 할머니가 결혼하실 때 찍은 사진, 집안별로 여러 사진들을 모아서 만든 사진책. 가족들끼리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이 담긴 여러 사진들을 보니, 사진아카이브 공간의 아늑한 분위기와 더불어 따뜻한 분위기에 저절로 함박웃음을 짓게되었다. 또, 사진첩을 가족구성원들에게 나눠줄 때의 행복함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