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나는 어느 누구에게 나를 소개할 때 , 주춤주춤하는 애매한사람이 되었다 . 그제야 비로소 주름진 아버지가 보였고 어딘가 모를 성난눈빛의 어머니가 보였다 . 세상을 향해 나의 시선을 펼쳐보리라 여겼던 그 세상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 쿠바혁명을 외쳤던 체게바라 생긴 것도 너무 멋있다며 방문에 그의 사진을 포스터로 붙였지만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점점 멀어져 갔다 . 그리고 불현듯 세상이라는 현실이 갑자기 나타났다 . 커다란 모니터로 배우의 연기를 확인하는 중에 서로 이게맞냐 . 저게맞냐하며 진지한 눈빛은 점점 사라졌다 . 그리고 이 작품의 외적인 부분을 자꾸따지기 시작했다 .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등등 조금은 다른생각 , 그렇게 나는 무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 아니 정확히 얘기해야 한다 . 내가 경쟁에서 밀려났다 .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했는데 다른 것들이 먼저 떠올랐고 그렇게 점점 평범해져 갔다 .

나는 변한 게 없다 . 없어야 한다 . 너희들만 변한 것이다 . 열심히 안 한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해서 인걸로 생각하겠다 . 나의 부족한 식견에 빠져 누구도 이해받기를 원하는 그런 영화가 된 것이다 . 영화를 하는 것과 알바를 겸한 것에 핑계는 굳이 하고싶지않다 . 누구의 탓으로 문제 삼고 싶지않다 . 나의 능력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세상과 점점 벽을 쌓았던 것 뿐이니까 . 아버지는 점점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횟수가 늘었고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 세우며 화를 자주내고는 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다 . 그 모든 주변의 것들을 이유로 들면 너무 아프다 .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 난 열심히 하지않아서 세상으로 쫓겨난 거다. 난 열심히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

도시의 하루가 곱게 분을 바르고 하나 둘 등을켠다. 거리는 누군가로 가득차고 높은소리, 낮은소리, 두터운소리, 얇은소리, 젖은소리, 성마른소리, 누군가의 하루가 쏟아진다.
위하고..위하고…마셔라!마셔라!

‘자 , 고생했네 . 이번 프로젝트는 다 자네들공이야 ‘
‘ 특히 유 실장 제안서가 아주 기발했어.’
‘ 일정 빠듯했는데도 불구하고. 잘 컨트롤해서 이끌어줘서 고마워.’
‘ 김 팀장 ! 이번 프로젝트 조금 더 수고해줘. 성과금이랑 두둑히 챙겨줄게 ’
‘ 저희 아이템 개발 워크숍 분기별로 하는게 어떨까요? 김 팀장님 ’
‘ 이 뉴스레터 시장에서 우리가 한번 제대로 깃발 하나 꼽아보자고 ! ’
‘ 그래그래, 진행시켜 ! ’
‘ 유 실장 그거 알아요 ? ’
‘ 큰 기업에 큰 인재가 여럿 들어와서 여럿 먹여 살리는 거에요.’
‘ 네네 ! 그럼요 !’
‘ 천재 하나가 수천, 수만을 먹여 살린다고 하잖아요.’
‘ 오늘 유 실장의 PT가 그랬어요. 핵심을 간결하게 돌파는 ..나 너무 흐뭇했다니까요 ’
‘ 뭐냐…이거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인데… …..ZZZ ‘

이제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을것이다 . 거창한 꿈 같은것은 이제 없다 . 나는 세상에 속하여 평범하게 살아갈 것 이다 . 그 동안의 살아온 나의흔적은 모두 지울 것이다 . 그래야 한다 . 그게 맞다 . 그리고 더 이상 주변사람에 대한 불만은 하지않겠다 . 내가 열심히 안 했고 그로 인한결과이니까 . 이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이전의 내가 아닌 .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것 이다 .

‘ 그렇게 불편했다니 미안하네 …’
‘ 아닙니다 . ’
‘ 배려해주신 부분은 항상 감사합니다 .’
‘ 그쪽 회사에는 잘 이야기해 놓았어 . 잘 적응하기바라고 …’
‘ 네 .’

‘ 자네에 대해선 평범한 이야기만 해 놓은 상태니까 크게 불편한 일은 없을거야 .’
‘ 더 이상 영화니 뭐니하는 것으로 자넬 괴롭히는일은 없을거네 .’
‘ 네 …’
‘ 정말 그만두려고?’
‘ 지금까지 해 온게 있는데?’
‘ 후회 안 할자신있어 ? ’
‘뭐 할지는 생각해 둔 거냐 ?’

최규혁 영화학교 동기 . 작년 운이 좋게 영화판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 그와는 그냥 편한 동네 친구였다 . 지금은 내가 어색해서 거리를 두는 중이었으나 이제 완전히 떠난다 . 떠날 수 밖에 없으니 떠난다 . 그 시절의 추억은 가끔 술안주로 꺼내먹겠다 . 하지만 나도 현실을 살아야하니 더 이상의과거얘기는 하고 싶지않다 .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면서 기계처럼 썼던 나의 시나리오는 이제 어디에도 볼수없다 .

‘ 이 내용 어떠냐 ? ’
‘ 여기 캐릭터는 좀 밋밋하지 않냐 ?’
‘ 그래도 , 우리사는 게 뭐 그리다이나믹한가 …’
‘ 그렇기도하지 .. 근데 요즘 OTT로 가면서 더 자극적이된 듯 하니 그렇지 … 암튼 좀 더 해봐 ..’
‘ 몰라… 임마 … 술이나 더 한 잔따라줘 ’

영화판에서 실패했다고 모두가 영화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 학교에서 영화과 강사로 일하기도 하고 방과 후 교사로 학생들과 수업을 하기도한다 . 넷플릭스같은 OTT플랫폼에서 일하기도 하고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 하지만 그 수는 누구에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
아마 그럴거다 . 처음부터 시작할 겁니다 .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했던 방식으로 들어갈 겁니다 . 낯설고 힘들겠지만 원하는대로 할 겁니다 . 다시는 … 세상을 바꿀테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포부는 갖지 않겠습니다 . 삶의 무거운 짐을 체험한 적이있는가 ? 그것은 매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내입을 틀어막으며 땅끝으로 이끄는 삶의짐 . 턱걸이를 만만히 보고 매달려 보면 알게된다 . 내 몸덩어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 현실에 던져져 보면 알게돼 . 이 치열한 순간의 버티는 게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지 …

수요일 오후3시 . 고객사와의 미팅 .

대표님 . 안녕하세요 . 한국대학교 발전기금 기획팀입니다 . 이번 뉴스레터 제작의뢰건으로 미팅을 하고자 합니다 . 장소는 한국대학교 연구공원 네비찍으시고 지하주차장 또는 근처에 주차하시고 건물 2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 ( 검정색 유리 삼각뿔 건물입니다 ) 패드나 노트북 지참하셔서 보내주신 포트폴리오 중 대표적인 것 한 두 개 보여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럼 수요일 오후3시 .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