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나는 행복,

‘아야코 록카쿠’

동양의 지두화(指頭畵), 서양의 핑거페인팅(finger painting)은 같은 듯 다르다. 두 장르는 미술도구가 아닌 손으로 직접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기원과 목적에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두화가 동양화가들 중심으로 종래 동양화의 모필화(毛筆畫)가 주는 미감과는 다른 화가들의 직관적이고 차별화된 개성적인 미감을 표출하는 기법에서 출발하고 전개된 반면, 핑거페인팅은 전문 화가들이 아닌, 어린이 대상 미술교육을 위해 개발된 데서 출발하여, 미술심리치료에까지 활용되어 전개되어 왔다.

근 몇 년새, 핑거페인팅이 전세계 서양화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들의 작품은 아트페어나 갤러리 등의 전시회, 인스타그램 등 SNS의 이미지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화가로 아일랜드의 ‘아이리스 스캇(Iris Scott)’, 한국의 ‘구구킴(GuGu Kim;김종해)’과 ‘지심세연(G-sim’ Seyeon), 가나의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a)’, 일본의 ‘아야코 록카쿠(Ayako Rokkaku)’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아야코 록카쿠’는 2000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25년차에 접어든 중견화가이다.국내 미술계에서 ‘아야코 록카쿠’에 주목하고 있다.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10년차되던 2009년 일주학술문화재단 초청전시 개최,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전세계 미술품 경매시장 상황이 안좋을 때, 기대 수익률이 높은 ‘저평가된 신예작가’로 주목받으면서 제32회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91cm 작품이 약 1억원에 낙찰받은 데 이어, 현재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아야코 록카쿠의 개인전, <아야코 록카쿠, 꿈꾸는 손>이 국내 최대규모로 진행 중에 있다.

작가의 초기 원화, 대형 오브제는 물론, 작가의 진가를 알아보고, 전폭적인 지원과 작품을 대량수집한 네덜란드 유명 갤러리 ‘델레이브 갤러리’의 작품 130여 점의 원본을 만나볼 수 있다하니, 최근들어 부쩍 그림책, 동화 등 ‘동심’을 담아내는 그림에 관심을 두고 있던 필자로서는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24년 1월 5일,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향했다.

# 기대되는 동아시아 여성작가, ‘아야코 록카쿠’

종전의 남성중심의 역사는 동시대 미술계에서도 ‘여성’을 키워드로 한 기류의 작품들, 여성성의 정체성을 다루는 ‘여성주의’ 작품들,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지위상승과 관련한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고, 연구하면서 여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조명하는 일이 가치있는 일이 되었다. 당장 올해 국내 유수의 미술관의 굵직한 전시가 기획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삼성리움미술관의 여성을 중심에 둔 불교미술을 조명한 <여성과 불교> 전시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여성주의 흐름을 반영한 <이사아 여성 미술가>전시가 그 예다.

한편, 동아시아 미술시장은 세력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 중심의 예술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던 미술시장의 경향은 점차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 여러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포용하는 경향으로 흘러와, 다양한 국가 출신의 작가와 작품들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규모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2023년 보고된 아트바젤·UBS의 ‘미술시장보고서’에 따르면, 프리즈를 개최한 한국은 40%, 세계미술시장 점유율 17%를 차지하는 세계 3위 중국은 11%, 일본은 28%의 미술시장 성장을 일궜다. 그 배경에는 첫째, 온라인 미술시장의 고도화로 인해 오프라인 시장보다 미술품경매에 언제, 어디서나,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된 조건은 희귀한 작품과 무명의 작가를 먼저 발굴하여 선점하려는 젊은 미술품 컬렉터들의 니즈를 충족시켜나가는데 충분했기때문이다. 둘째, 세계 3위의 중국뿐만 아니라, K-컬쳐로 위상이 높아진 한국과 다채로운 캐릭터와 색상의 현대미술품이 인기있는 일본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데 있다.

이런 차원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세계미술시장 1%의 점유율을 차지한 일본의 경우, SBI 옥션의 연간보고서에 다르면, 2022년 총매출액은 2021년 대비 1.5배 상승, 작품별 평균 가격 및 최저 추정가 대시 판매가 역대 최대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또한, 한국미술시장에서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 등 남성작가들이 오프라인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온라인 Live Stream 플랫폼을 통해 여성작가 ‘아야코 록카쿠’의 <Untitled>이 약 18억원,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Y NETS>가 약 16억원, <Butterfly[TWWEN]>가 약 15억 3천만원에 거래되어, Top3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야코 록카쿠’는 2007년 일본 신화옥션에 60cm 정도의 골판지 페인팅이 처음 출품되어 약 680만원에 낙찰된 이래, 현재까지 수백점의 작품들이 경매에서 거래되어 오면서, <Untitled>작품이 지난 2022년 제52회 일본 SBI 경매시장에서 18억원을 호가한 것이다. 2018년에 약 6-8억원을 호가하면서 컬렉터들간 거래되지 않았을까 추정되던 때를 지나 4-5년새 2.5배가량 작품가격이 올랐다. 이 거래 기록으로 ‘아야코 록카쿠’ 개인 최고 낙찰가를 갱신, 요시토모 나라, 쿠사마 야요이를 잇는 일본현대미술을 이끌 스타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유럽미술 시장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0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델레이브 갤러리(Gallery Delaive)에서 첫 개인전 개최를 시작으로, 미국으로까지 진출하여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계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대열에 ‘아야코 록카쿠’도 당당히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것이다.

# 동심(童心)과 춘심(春心)을 부르는 핑거페인터

‘아아코 록카쿠’의 그림은 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큰 눈망울의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선 등 미술기법, 총천연색의 사용을 통해 작가의 순수한 동심을 담아내고 있다. 동심을 그리는 화가들은 많다. 일본의 미사키 카와이Misaki Kawai),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스페인의 에바 알머슨(Eva Armisen), 한국의 박승희 작가 등이 있다.

‘아야코 록카쿠’의 그림은 스케치없이 즉흥적으로 그린 독창적인 핑거페인팅 작업방식으로, 특별한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더 특별하다. ‘아야코 록카쿠’가 도쿄 공원에서 골판지에 그림을 사서 그리던 초기 시절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추상적으로 변한 작업 스타일을 담은 3m가 넘는 대형작품 3점, 높이 2.3m의 대형 오브제 ‘고스트 래빗 두 마리와 함께 있는 조각’이 전시되고 있다. 2m 원형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 ‘Untitled’는 봄날의 곷밭에 누워있는 듯한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따스한 봄을 연상시키는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들은 아트마켓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작들이다.

전시는 초기작들로 구성된 ‘맨발의 작은 소녀’, 작가의 대표작들로 구성된 ‘꿈꾸는 손가락’, 도쿄를 벗어난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 그려낸 작품들로 구성된 ‘더 넓은 세상으로’, 도쿄의 음악 레이블 ‘콘트라리드’와 협업한 애니매이션의 각종 캐릭터와 영상 등 ‘어바웃 어스’작품들로 구성된 ‘나의 친구들’섹션, 수십년간 델레이브 가족들과 교류를 해온 작가와의 친밀감을 엿볼 수 있는 ‘엘레이브 패밀리’ 포토월 섹션, 2021-2022년 사이에 제작된 ‘봄의 시작’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야코 록카쿠’는 주로 핑크 색상을 사용하면서 큰 눈의 소녀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등 우리의 어린시절을 환기하는 소재들을 그렸다. 전시를 보는 내내, 어린소녀, 강아지, 나비가 한데 어울어진 놀이터에서 함께 놀다온 기분이 들게했다. 역시 이번 전시를 기획한 CCOC의 강욱대표도 “아야코 록카쿠는 봄을 부르는 아티스트다. 사랑스러운 봄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표현해서, 관람객들이 동심도 느끼면서 춘심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 ‘아야코 록카쿠’가 있기까지

‘아야코 록카쿠’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유명 갤러리 델레이브 가문의 지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 초반에 ‘운명적인 만남’이란 샌트아트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이 순간부터 당신이 만드는 모든 것을 전부 소장할 것입니다.” 실제로 델레이브는 이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아야코와 2006년부터 인연을 맺어오면서, 현재까지 소장한 아야코 록카쿠의 총 작품수는 965점이나 된 것을 델레이브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모두 델레이브 갤러리 소장품인것만 봐도 그들이 아야코 록카쿠에 대한 무한 신뢰, 무한한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로 ‘아야코 록카쿠’로 인해 미술계에서 여성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확대되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와 성장에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전시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 2023년 12월 2일(토)부터 시작되어 2024년 3월 24일(월)까지 열릴 예정이다.

사진제공
CC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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