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잇는 공간, 김승경이용사의 ‘덕성이용원’

‘덕성이용원’에 들어서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체 “왠 젊은 여자가 여길 다 왔지” 하는 눈빛으로 나의 동태를 살피기 바빴다. 나이든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장소적 특성에, ‘덕성이용원’ 조사 중 유선전화 정보를 찾을 수 없던지라, 불쑥 찾아온 필자를 보고, 원장님마저 그런 눈빛으로 보는게 당연했다.

아침 10시 조금 안되서 이용원에 도착했지만, 벌써 6명의 손님이 마루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30분까지 4명의 손님이 더 오셨다. 공식적으로는 오전 7시부터 시작이지만,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1시까지만 영업하는 6시간 30분이란 짧은시간의 영향도 있었지만, 60년가까이 쌓아온 원장님 덕(悳)이라 짐작해본다. ‘덕성이용원’, 핫플레이스였다.

〇 낡았지만 멋스러운 물건들, 그리고 전통방식의 이용기술
여기저기 살펴보니, 이용원 건물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이용원 안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오래됐다. 기계식 이발기(손 바리캉), 가위, 빗, 드라이기, 면도칼 등의 이용기구들과 목제가위꽂이, 목제이발대, 목제수납장, 세숫대야, 염색시약용 바가지, 벽걸이가스보일러의 이용가구 및 이용보조용품, 그리고 공중전화, 난로 등은 오랜세월 거쳐오면서 낡았지만, 제 위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원장님의 이용기술은 1966년 이용사면허증을 취득한 이래, 58년째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관찰해보니, 손님들은 본인들 차례가 되면, 겉옷을 벗거나, 윗도리까지 벗고, 이발의자에 앉았다. 원장님이 손님 목에 수건을 두른다. 이때부터 원장님의 손님맞춤 기술이 시작됐다. 조발(調髮)은 조발(調髮) >면도(面刀) >세발(洗髮) >정발(整髮) 순이었고, 염색(染色) 은 도포(塗布) >대기(待機) >세발(洗髮) >면도(面刀) >정발(整髮) 순으로 진행됐다.

이 중 면도와 세발이 꽤나 흥미로웠다. 면도시, 의자를 뒤로 제껴서 서비스를 해주시는데, 손님이 누운채로 진행되는 모습이 마치, 수술대에 환자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발은 세면대에서 손님이 앞으로 고개를 숙이면,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시는데, 손님들은 내친김에 스스로 세수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윗도리까지 벗으신 손님은 이 과정에서 옷이 젖는게 싫으셨던 모양이다.

60여년 내공의 이용기술이 낡은 물건들과 빚어내는 멋스러운 이용원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〇 情을 나누는 공작소, ‘덕성이용원’
“나 취재 안햐~서울에 있는 기자들 다 돌려보냈어~” 처음 원장님이 입을 떼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어떡하지 고민하면서 1시간이 흘렀다. “내 머리가 너무 까먀~”라며 서비스받는 손님이 말한다. 원장님은 “염색약이 떨어져서 옆에서 급하게 사와서 그랴~”라며 받아치셨다. 그러자 손님은 “저 양반, 서울서 여까지 왔다는데, 그래도 얘기는 혀봐~”라며 슬쩍 인터뷰자리를 깔아주신다.

2시간 30분즈음 기다렸을까. 이제 원장님과 얘기할 수 있을까. 주민으로 짐작되는 두 남자분이 오셔서 원장님한테 본인들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하신다. 단골들인듯 하다. 들어오자마자 이동네 못살겠단다. 꽃을 심어놨는데, 누가 뿌리째 캐갔단다. 꽃 몽우리도 여물기전에 줄기올라온거만 보고, 캐간거면, 꽃 좀 아는 사람인가부다 하신다. 많이 속상하신가보다.

손님들이 다 빠진 12시 30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이야기나눌 수 있었다. “기자님이랑 얘기가 마지막같어. 더는 못할거같어 힘들어. 진짜여. 같이 여기있던 친구마저 아파서 병원에 있어. 이제 내 차례인가벼”라고 하셨다. 이용일이 힘에 부치시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에 이곳을 인수한 이후, 건강하게 이용사를 해오다 2011년에 심장판막수술을 거치고, 6년 뒤 중풍까지 앓던 고비를 겪었다.

그러면서 여태 이 자리에 있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 6시 30분에 오픈해서 오후 1시까지만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단골들은 새벽 5시부터 기다리고 있으니, 단골들때문에라도 힘이 닿는데까지 일하실거라고 하셨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멀리서온 단골들이 궁금했다. 가장 멀리서 오시는 분은 필리핀 분이시라고 하셨다. 젊었을 때 필리핀으로 넘어가서 ‘덕성이용원’이 그리운지 1년에 한번씩 아들을 졸라서 오자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요 몇 년 연락이 통 없으셔서 돌아가셨는지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가장 오래된 손님은 50년 단골이라고 덧붙이였다.

인터뷰 직전 손님도 10년째 덕성이용원 단골이라며, 신식 미용실은 못가겠다고 절레절레하시며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하셨다가 약속이 있다고 먼저 자리를 뜨셨다.

〇 오래가는 동네놀이터
예전 이 동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50년대 60년대에는 여기가 ‘돼지골’이었어. 1970년대는 죄다 논밭이었고.” 돼지농가들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인줄은 동네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었고, 7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농경사회 풍경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지켜보니, 어르신들이 ‘덕성이용원’에 머리손질만 하러 오는게 아니라, 단골, 동네주민들이 원장님과 도란도란 情을 쌓으러 오시는 모습이 보기좋다고 말씀드리면서 필자가 자랐던 시골동네의 생활문화의 한 축이었던 마을회관 중심의 커뮤니티 문화를 말씀드렸다.

당시 필자의 마을회관에서는 혼례·장례, 단오·추석·설 등 큰 이슈가 있을때뿐만 아니라, 누군가 소, 닭 등을 잡을때, 혹은 일상 속에서 단순히 맛있는거 먹고싶고, 수다떨기 등 재밌게 놀고싶을 때 동네 대부분의 남녀노소가 모여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났다.

원장님은 여기 ‘덕성이용원’도 과거엔 필자가 말한 시골동네의 문화회관같았다고 했다. 이용원 구들장이 다 깨질정도로 밤새 윷도 놀고, 화투도 놀았다고 말씀하셨다.

‘덕성이용원’은 변발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근대화의 산물이다. ‘덕성이용원’은 1990년대 남성전용미용실의 등장, 2000년대 현대식 이용원이 급증하는 도시화를 겪어오면서 점차 전통방식의 이용원이 사라져가는 추세 속에 지금까지 율량동 1335번지에 있다. 과거에도 김승경원장님이 계신 ‘덕성이용원’은 동네사람들 놀이터였고, 세태가 변한 지금도 어르신들의 동네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시민들이 직접 ‘덕성이용원’을 미래유산으로 추천했으리라.

어르신들의 동네놀이터 ‘덕성이용원’이 오래가기 위해서 훼손과 보수에 대한 대책마련 등 공적지원이 필요함을 느끼면서 이용원을 나섰다.